이재명 대통령의 시대가 시작됐다. 그간 수많은 좌절과 분노, 고뇌의 시간들이 있었다. 다행이다. 그는 일성으로 승리의 공을 국민들에게 돌렸고,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국민통합을 달성할 것이라 재차 강조했다.
지난 6개월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포함해 터무니없는 상황들이 전개됐다. 그나마 잘 정리됐다. 다만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느낌도 든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현실은 처참하다. 국난의 절벽 위에 서 있다. 국제정치 현실은 너무나 엄준하다. 국내적 분열이 극심한 가운데, 오랜 세월 당파적인 대외정책 집행으로 붕괴된 대외정책 생태계는 취약하기만 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장 미국 트럼프 정부와 관세와 방위비 분담금 협상, 주한미군 분산 배치, 한·미 동맹을 대중 군사동맹으로 전환하는 문제 등을 다뤄야 한다. 철저한 실리주의인 일본과도 거친 협상이 남아 있다. 2025년 제7광구 관련 새로운 협상을 시작해야 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생각하는 일본은 미동도 없다. 일본은 한·일 협력이나 지역적 안정성보다 철저하게 자신들의 국부적 이해관계를 챙긴다. 최근 불거진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일본이 주도하는 일본 지키기’ 프레임이다. 실제 대외적으로 투사할 군사력을 지니지 못한 일본은 주변국들이 지니는 중국의 위협을 기반으로 대중국 군사 안전판을 확보하려 하면서 한국을 이 프레임에 가두려 한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경직된 대중 정책을 채택해 자신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려 한다.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일본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향후 10년간 동아시아 최대의 갈등과 충돌은 제주 남단 해역에서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
과거와 다른 중국·북한 상대 과제
중국은 더 큰 도전을 야기한다. 현재의 중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향후 보다 더 군사적인 공세성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서해에서 중국의 영향력 행사는 더욱 노골화되고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금융, 무역, 군사적 대중 압박에 대해 중국은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와 서방의 군사적 한계를 목도했다.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서방 무기를 압도한 중국 무기체계의 우수성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군사적 강압에 의한 대만 통일에 대해서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군부를 과연 억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드는 게 현실이다. 이재명 정부는 우리가 알던 그 중국과는 전혀 다른 중국을 상대해야 한다.
북한 역시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 스스로 한국과는 전혀 별개의 국가라는 것이다. 비핵화는 북한의 국가 정체성과 결부됐다. 북한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국제적 신냉전 상황을 공식화한 바 있다. 러시아와 군사적 동맹 관계에 들어섰고, 중국을 그 배후 기지로 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안중에도 없다. 미국과의 협상에도 결코 조급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의 많은 인사들은 아마도 과거 북한 문제에 친숙한 인물들일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무엇보다도 먼저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한 북한과는 전혀 다른 북한을 접하게 될 것이라는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조급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정부는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중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새로운 방식의 동반자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일본과는 가치와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이웃 국가로서 협력을 증진해야 한다. 러시아와도 소통을 강화하고, 윤석열 정부 시기에 해체된 양자 관계를 복원하고, 북·러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유연한 동북아 다자관계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한·미·일 공조와 더불어 한·중·일(환황해)-한·일·러(환동해) 협력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동북아를 협력의 망으로 촘촘히 얽어매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전략적 시야를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고, 유럽이나 글로벌 남반구와의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구시대적 인물·방식은 지양해야
이 모든 대응의 시작은 인사에서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전형 실용주의자이다. 주변에 구름처럼 몰려 있는 지지자들을 냉정히 평가하길 바란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도전에 구시대적 인물과 방식으로 응전하려 한다면 실패는 자명하다. 내란 지지 세력만 아니면, 아니 그 핵심 동조자만 아니면 천하의 인재들을 다 모아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해 숙의하길 바란다.
향후 대한민국 대외정책의 우선적인 방향은 무엇보다 지역적·전략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역적 안정성이란 특정 국가가 급격한 세력 변동을 시도하거나, 강대국이 약소국을 강압해 자신만의 힘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억지하는 역량을 의미한다. 이는 변화를 거부하거나 현상 유지만을 고집하는 개념이 아니다. 다만 급격한 변동을 꾀하고 강대국이 과도한 수단을 동원해 타국을 압박하는 것에 대한 거부이다.
전략적 안정성이란 강대국이나 핵보유국이 무력이나 핵을 사용해 자국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반드시 전략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책수단으로서 핵의 사용을 억제하는 레짐 강화와 국제관계 형성에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일방이 독단적으로 전쟁을 시작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 교역통상국가, 중견국가로서 대립과 충돌보다는 소통과 평화를 원하고, 급격한 변동보다는 예측 가능한 점진적인 변화를 선호한다. 한국의 외교 방침은 강대국들과의 적대관계는 지양하고, 화평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상이나 국력을 고려할 때, 강대국들과 극단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로 악화되는 것은 배제해야 한다. 물론 이는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이고, 누구라도 쉽지 않은 과제일 것이다. 하늘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잘 활용해 이재명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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